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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카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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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신작인

이 영화는 루이스 부뉴엘 이 감수한 알랭 레네의 시나리오를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연출한 것처럼 느껴진다...

멜로처럼 느껴지긴 하나, 지적이면서도 통찰력이 느껴지는 영화다..

보고난 후의 느낌은 어리둥절하고 어렵기도 하구...

지금까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보여준 영화 미학은 이란이라는 지역적 특이성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풍요로운 페르시아 전통 문화와 철학의 자장 안에 놓여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 혁명 이후에 자행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조건들, 혹은 한계들을 버리고 프랑스 배우와 영국 배우를 대동한 채

이탈리아의 투스카니로 훌쩍 날아가 영화를 완성했다.

한때 국제 영화제를 주름잡았던 이란 감독들에 묶여, 다분히 이란적인 영화로 통칭되었던

사실이 못내 섭섭하기라도 하듯 그만의 정제된 미학을 선보인다.
영국인 작가 제임스 밀러는 자신이 쓴 '기막힌 복제품'이라는 수필집 관련 강연차 이탈리아의 투스카니에 온다.

그곳에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프랑스 여인은 아들과 함께 그 강연장을 들린다.

그녀는 팬임을 자처하며 그에게 투스카니의 시골 마을을 소개해준다.

부부로 오인한 카페 주인으로 인해, 그들은 결혼 15주년 기념 여행을 온 부부인 척 연기에 몰입한다.

어느 순간, 이들은 추억을 공유한 진짜 부부처럼 서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다투며 관객을 혼란에 빠트린다.

이 짧은 만남에는, 처음 만나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연인의 모습에서부터

오랜 결혼 생활로 서로에게 지쳐있는 부부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제임스와 여인의 사랑(부부 연기)은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로부터 촉발되고 또 완성된다.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신혼부부들은 그들의 15년 전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니, 상상하게 만들며 15년 전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거짓말을 유도한다.

결혼은 잠재태로 늘 거기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선택받지 못한 과거일 뿐,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일 뿐,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부모를 연상시키는 지긋한 나이의 노부부는 그들에게 부부 관계에 필요한 진심어린 조언을 해준다.

그리고 서로를 부축하며 말없이 느릿느릿 걸어가는 주름이 깊게 파인 노부부의 모습에서

그들은 가능할지도 모를 미래를 일별한다.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영화적 실험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지그재그 3부작'이라고 불리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있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반복 강박이나, 사실과 허구의 교묘한 맞물림이 보다 세련되게 펼쳐진다.

특히 이 영화는 거울, 창, 문을 통해 화면 속에 반복적으로 프레임을 생성하며 현실로 나아간다.

프레임에 갇힌 이미지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나 숨을 쉰다. 프레임은 그렇게 닫힌 채로 열려 있고 열린 채로 닫혀 있다.

그것은 진실인 채로 거짓이며 거짓인 채로 진실인 이 영화의 모순적 수사법과 공명한다.

거짓은 모방을 낳고 모방은 진실을 낳는다.

사랑(삶)은 다른 누군가의 사랑(삶)을 모방(연기)하며 무한 반복된다.

그리하여 복제는 삶의 본질로 거듭난다.

반나절의 투스카니라는 한정된 시공간에서 기나긴 삶과 사랑을 성찰해내는 대가의 숨결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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