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고 나니 류시화가 묶어 낸 시집인가 잠언집인가가 생각났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인가...
제목 그대로 교육에 대한 영화다.
학교에서 배우는 제도권 내의 교육과 직접 경험으로 배우는 인생 경험을 말하고 있는 작품으로
영국의 유명한 여성 저널리스트인 린 바버가 잡지에 10페이지 내외로 기고한 것을 읽은 작가 닉 혼비가
홀딱 반해서 영화화에 앞장섰다고 한다.
닉 혼비가 쓴 시나리오는 오스카 각본상 후보에도 올랐다.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 전까지는 '듣보잡'에 가까웠던 캐리 멀리건이라는 여배우의 탄생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때는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사라질랑말랑하는 60년대 초의 영국.
옥스퍼드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 우등생 제니는 우연히 비밀스러운 '아주 많이 연상'인
남자 데이빗을 만나게 된다.
공부 때문에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었던 제니에게는 말빨 있고 돈 잘 쓰고 진짜 어른 같은 이미지의
데이빗이 멋져 보이기만 한데...
엄격하게 대학 진학을 종용해왔던 부모와 선생님들의 말도 들리지 않고
자신의 환상을 실현해주는 데이빗에게 반해 공부와 담쌓게 된 제니.
그녀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지루하게만 느껴지고 자신이 경험하는 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원작자 린 바버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었던 그 때의 '실수'를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뭐겠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니는 결국 옥스퍼드에 진학한다.
옥스퍼드에 약간 늦게, 여러 사람 좀 괴롭힌 끝에 진학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앙큼한 아가씨는 사기꾼이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멋있긴 한 남자와 첫경험도 하고 파리도 가고 클럽도 가고
유명한 미술품도 보고 피크닉도 다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공부 열심히 하고 난 후 자신이 속해있던 곳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영화가 심심하게 느껴졌다면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린 바버의 실화를 크게 바꾸지 않고 영화화했기 때문에 드라마틱함이 적다는 점이다.
린 바버가 한 때의 실수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길바닥에 내팽겨쳐졌더라면,
파리에서 버려져 구걸하는 여자로 전락했다면 사람들은 아주 흥미로워했겠지만...
그러나 그녀의 일탈은 말 그대로 일탈일 뿐이었고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친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잠깐 방황한 소녀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으니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진 관객들은 아마도 분노할 듯 한데...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밋밋함과 통속성이 되려 장점이다.
서사가 주는 즐거움은 적은 대신 세상이 자신에게 열려있다는 착각으로
기쁨에 들뜬 소녀와 브루조아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그녀의 부모의 심리를 깊게 파고든다.
제니는 데이빗을 사랑한 것일까?
에디드 삐아프를 들으며 파리를 꿈꾸지만
실현은 대학 진학 이후의 일로 유보된 모범생에게 데이빗은 그 꿈을 실현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전후의 영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계급 상승을 꿈꾸기 시작했고 제니의 대학 진학은 계급 상승과 동급이었을 것이다.
제니는 데이빗을 통해 다른 방식의 계급 상승을 꿈꾼 것이 아닐까.
그녀가 학교 밖에서, 책 밖에서 배운 교육내용은 바로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것일 게다.
받은 만큼, 줘야 한다. 기브 앤 테이크다.
세상의 법칙을 책에서 배워도 소용없다.
누구 식대로 말하면 '직접 당해봐야 아아~' 하고 알게 된다는 것.
당돌하고 도도하고 지적이지만 때론 어리숙한 제니를 너무나 우아하게 잘 연기한 캐리 멀리건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고
그 눈빛이며 입술이 약간은 사악해 보이는 피터 사스가드의 연기도 좋다.
중간 중간 닉 혼비의 개성이 발휘되기도 하지만 대본은 그렇게 통통 튀지는 않는다.
통통 튀는 것은 의상 정도로 음악도 좋고 화면도 좋고 다 좋지만 '파리에는 가보지 않았다고 말한다'로
끝나는 심심한 결말은 실화라는 한계를 인정한다고 해도 좀 아쉽다.